조용한 방 안을 창문 틈으로 희미한 달빛이 스며들어 침대 끝자락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시계 소리도, 바깥의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는 두 사람 사이에 천으로 덮인 듯 앉아 있었다.
야치는 조심스레 몸을 돌려, 니토 쪽으로 조금 다가갔다. 니토는 그 움직임에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깊은 잠은 아닌 듯한 숨결이었다. 조금 더 가까이 야치는 손끝으로 니토의 셔츠 자락을 잡았다.
"...니상."
조용한 부름. 숨결에 섞인 불안함이 조금 묻어났다. 니토는 눈을 떠 천천히 야치를 바라봤다.
"왜?"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괜찮아요?"
니토는 손을 뻗어 야치의 머리 위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응. 괜찮아. 야치가 원하잖아."
그 한마디에 야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니토의 품에 안겼다. 니토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품 안으로 파고드는 야치의 체온이 느껴졌지만, 감정이 실린 동작은 없었다. 그저, 받아들였다. 조용히 눈을 감은 야치에게서 작은 속삭임이 입술 사이에서 새어 나왔다.
"…여기 있으면 안심돼요."
니토는 그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손이 아주 천천히, 다정하게 야치의 등을 한 번 쓸고 지나갔다.
달빛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처럼 포개져 있었다.
야치의 숨결이 천천히 고르게 흘렀다. 니토는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은 여전히 야치의 등을 가볍게 쓸고 있었지만,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특별한 의미도 없는 행동이었다. 그저, 야치가 원하니까.
달빛이 커튼 너머로 희미하게 잠든 야치의 얼굴을 비췄다. 니토는 그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무의식 중에도 야치가 자신을 꼭 붙잡고 있는 손이 작고 따뜻했다.
‘왜 너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 그런 질문조차 의미 없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어릴 적 자신이 놓쳐버린 그 아이.
지키지 못한 약속의 끝.
그리고 야치.
그 세 가지가 뒤섞이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구분조차 흐려졌다. 니토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열었다. 마음 한구석에선 희미하게 불안이 떠올랐다. 이것이 집착인지, 미련인지, 아니면 죄책감인지—이제는 그마저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지금 야치가 자신 품 안에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니상…”
야치가 꿈을 꾸는지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손이 니토의 셔츠를 다시 한번 쥐었다. 니토는 가만히 그 손을 바라봤다.
이 아이가 만약 자신을 떠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순간적으로, 니토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그리고 그는 결심했다.
떠나는 일 따윈 없다.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괜찮아, 야치.”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적어도, 야치가 원하기만 한다면 자신은 영원히 다정한 얼굴을 해줄 수 있다. 야치가 원하는 그 모습 그대로.
니토는 야치를 자신의 품에 조금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그의 표정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지만, 손길만큼은 여전히 다정했다. 자신이 이 아이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마음속 깊이에서 이해할 수 없는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이것이 어쩌면, 지금 그가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진짜 감정’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 밤은 그렇게, 말없이 깊어갔다.